편집/기자: [ 최화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1-04 10:48:56 ] 클릭: [ ] |
- 《윤동주 평전》을 읽다  김 혁 겨울이면 생각나는 작가와 작품이 있다. 일본 최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이며 노란 초옥의 처마밑에 수정처럼 매달린 락수물 얼음을 읊은, 지난 30년대 룡정에서 살았던 윤극영의 《고드름 》이며... 그리고 침잠의 계절 겨울이면 나는 한 시인을 떠올린다. 북간도의 매운 바람 속 일년의 맨 마지막 날에 태여난 한 시인을... 백년전, 1917년의 맨 끝머리인 12월 30일, 추위 속에 온 그는 바로 우리의 시인 윤동주이다. 1980년대 윤동주가 뒤늦게나마 고향 연변에 알려지면서 《문학과 예술》지에서 윤동주라는 이름을 맨 먼저 접했다. 그의 시비가 다른 곳도 아닌 나의 모교인 룡정중학에 세워졌을 때의 놀라움, 저 유명한 〈서시〉를 처음 읽었을 때의 그 전률, 지금도 내 심방(心房) 깊은 곳에 화인처럼 남아 잊을 수 없다. 문학도시절인 1988년 열음사판으로 나온 《윤동주 평전》을 선배문학인에게서 빌려 읽었고 윤동주의 생애를 장편으로 소설화하면서 다시금 증보판, 개정판들을 거의 모조리 사들여 거듭 읽었다. 윤동주의 생애 읽기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시도되여 독자들과 만났다. 한국에서만도 그의 시세계에 대한 연구로 박사, 석사학위를 받은 이가 무려 50여명이라 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송우혜의 《윤동주평전》이 압권중의 압권이요, 경전중의 경전이 아닌가 생각한다. 평전에는 그의 맑은 령혼이 준미(俊美)하게 담겨져 있다. 력사학에 천착하면서도 원체 소설가였던 송우혜는 친지와 친우들의 증언들을 토대로 하고 빈틈없는 현장답사와 풍부한 자료를 섭렵, 룡정광명중학의 학적부, 일경의 극비 취조문서, 판결문 등을 비롯한 각종 자료들을 동원하고 그에 대한 집요한 추적과 분석을 가했다. 그저 단순한 책상물림의 상상력 연 띄우기 방식이 아니라 치밀한 작업으로 실존적 고뇌와 준엄한 륜리적 태도를 지니고있는 한 고절한 시인의 마음의 행보를 샅샅이 더듬으면서 그 생생한 숨소리까지 평전은 들려주고있다. 
평전을 읽노라면 반일의 책원지인 북간도 명동에서 태여나 어려서부터 서울에서 보내온 간행물을 읽으며 문학의 꿈을 키워온 윤동주, 일제야수들의 민족말살의 잔학한 술책에 학교를 이리저리 옮겨야 하는 수모를 겪는 윤동주, 경성의 연희전문에 입학하여 구지욕을 불태우던 윤동주, 참회를 읊조리며 일본으로 류학길에 올랐던 윤동주, 일본형사들의 마수에 떨어져 후쿠오카 감옥에 갇혀서 생체실험의 의혹을 남긴 채 민족의 해방을 불과 몇달 앞두고 비명에 간 윤동주의 삶과 문학의 려정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작가는 시인의 생의 순간순간에 현미경을 들이댔는데 대상에 대한 장악력으로 그 일거수 일투족을 묘사하는 치밀성에 엄지를 빼들지 않을 수 없다. 과시 “윤동주라는 인물연구의 결정체요, 평전문학의 진수”라는 평단과 독자들의 찬사처럼 인물전기의 진수를 보여준 평전이였다. 조선족문단에서도 뒤미처 인물전기가 각광받는 풍토가 일고있다. 유수(有数)의 작가들이 전기문학에 매료되고 그 성과물로 책자들도 적지 않게 나왔다. 하지만 그 작품수 더우기 수작의 미량(微量)으로 우리의 전기문학은 아직도 걸음마타기라 봐야 할 것이다. 조선족 문단에서 전기문학이라는 새로운 쟝르는 아직 도정 우에 있으며 그 저변이 아직도 척박하다. ‘주마간산’식으로 남들이 모두 거쳐 간 주인공의 사적지를 뒤늦게 찾아보고는 ‘발견’, ‘기적’이라는 수식어를 거리낌없이 란발하며 자화자찬의 미주를 기울이는 흥감스러운 이들도 있고, 책상머리에 앉아 손 가는대로 여기저기 무우 뽑 듯이 이미 선인들이 뼈를 깍아 이룩해낸 사료들을 뽑아 무채를 쳐서는 자기가 만든 료리인양 버젓이 내놓는 이들도 보이며 남이 이미 쓴 인물전에 대해 굳이 한마디라도 깍아내려야 직성이 풀려 하는 학풍이 바르지 못한 얍삽한 몸짓도 보인다. 좋은 인물전은 한 인물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 그가 살았던 시기의 력사 문화적 배경에 대하여 머리로, 발로 뛰는 충분한 고찰을 바탕으로 씌여져야 한다. 쓰고저 하는 해당 인물의 삶이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가졌는지에 대한 추적과 판단과 조명은 고스란히 인물전을 쓰는 작가에게 맡겨진다. 그러니 여타 쟝르에 비해 붓대가 더더욱 무거워질 수 밖에 없다. 내 인생의 가장 곤고했던 시기에 나는 윤동주 시인을 만나게 되였다. 그이를 삶과 문학의 사범으로 간주하여 나는 고향의 작가의 시안으로 새로운 《윤동주 평전》을 집필해냈고 련이어 그의 숙명의 동반자인 《송몽규 평전》도 창작, 발표중에 있으며 그이를 기리는 사단법인 단체 룡정.윤동주연구회를 발족하기에 이르렀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그 시대 상황에 발을 담그고 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다수의 작가, 시인들은 그의 삶이 맞닥뜨리는 시대와 타협하거나 굴복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만큼 문학이 이런 상황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그의 작품이 담보해줄 수 있느냐는 그 작가와 그 문학에 대한 평가에 중요한 단서와 준거가 될 수 있다. 보잘 것 없는 눈 높음과 영욕에 눈 멀어 하루하루를 공리와 독선의 아집에 매달려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적어도 자신의 량심에 비추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사는 것도 결코 록록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윤동주는 보여준다. 천형(天刑)처럼 짊어지고 평생을 살아온 문학적 열망과 민족애로 북간도 오지의 한 문학지망생이 민족 최고의 시인으로 떠올랐으며 그렇게 엮어진 그의 작품은 알알이 진주처럼 값지고 빛나오르는 것이다. 드높은 격조와 기품을 갖춘 윤동주, 고향이 배출한 자랑스러운 한 시인의 이야기를 이 겨울날 다시금 필사(笔写)로 남기며 밑줄 그어가며 읽는다. 이제 시인의 고고한 삶과 정신은 이미 내 삶 속에 한발자욱 깊게 들어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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