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13 08:47:24
지난 《연변일보》 1월 16일자 ‘겨레의 창’ 지면에 5개 성을 돌면서 꿀을 뜬다는 허동춘씨의 기사가 실린 후 많은 사람들로부터 격려의 메시지를 전해받았다. 그런 와중에 ‘북경 동인당 꿀사건’이 터졌고 세상 민심은 꿀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가짜꿀일 경우 10만원을 배상하겠다.” 허동춘씨가 ‘공약’한 이 말에 그 진실성을 확인할 필요를 느꼈고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을 파고 싶었다.
마침 허동춘씨가 2월 24일 운남성 추웅지역으로 꿀을 뜨러 간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무작정 동행했다.
청정한 날, 차마고도에 가다
고향이 화룡인 허동춘씨(43세)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왼쪽 다리는 거의 굽히지 못하고 있었고 왼손 다섯손가락중 세 손가락은 힘줄이 끊겨 굽히지도 펴지도 못하고 있는 4급 장애인이다. 하지만 사업에 대한 의욕은 대단했고 집념은 남달랐다.
운남으로 떠나면서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차마고도(茶马古道)였다.
차마고도는 중국 운남성과 사천성 등 서남부에서 서장, 인도에 이르는 고대의 비즈니스 길을 가리킨다. 다양한 민족들이 상생을 위해 두 발로 다졌을 차마고도에 조선족청년이 자기의 창업족적을 남겼다는 것이 몹시 경이스러웠다.
추웅은 운남성 운귀고원과 진중고원에 위치한 이족자치주 수부이다. 대부분 지역의 해발이 1000~1900메터 사이이며 가장 추운 1월에도 섭씨 령상 7.4도이고 가장 더운 6월의 기온도 섭씨 21.4도에 불과하다.
“배척이 심하지요. 이제 가보면 알게 되겠지만 여기 산중에 아무나 양봉장을 펼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며칠 전에도 추웅지역에 벌통을 싣고 들어왔다가 쫓겨간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부족문화에 가까운 소수민족지역에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그제날 약소민족으로 자기의 삶터를 통채로 빼앗긴 아픔을 지닌 민족들인지라 이들에게는 쉽게 받아주는 문화가 없었다.
아침 7시 20분에 출발한 우리는 저녁 4시 30분이 다 되도록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일단 려관에 행장을 풀기로 했다.
“운남에서는 유채에 농약을 많이 칩니다. 그러나 사천성 자양시에서는 유채밭에 농약을 안 치지요”
담담하게 내뱉는 그의 말은 실로 뼈있는 한마디였다.
지천에 널린 운남의 유채꽃을 둬두고 허동춘이 사천으로 이동하는 리유였다.
려관에 행장을 풀자마자 동업을 하는 분들이 그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저녁식사를 요청했다고 하였다.
누구랑 오는 걸가? 이족이든, 백족이든, 다이족이든 소수민족 친구를 만날 수는 있는 걸가?
저녁식사가 기대되였다.
꿀은 벌만 만드는 게 아니였다
저녁식사 초대로 찾아주신 손님들중 소수민족은 없었다.
사천, 하북, 하남, 흑룡강 등 성에서 모여온 한족들이였고 언행에 거침이 없었으며 환영의 말이나 격식 같은 건 아예 찾아 볼수 없었다.
꿀에는 숙성밀과 수밀이 있다. 숙성밀은 채밀로부터 꿀을 받아낼 때까지 7일 이상 걸리지만 수밀은 거의 날마다 뜰 수 있다. 숙성밀은 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지만 수밀은 여름철 밖에 내놓으면 쉽게 변하는 약점을 갖고 있으며 가격도 숙성밀의 3분의 1밖에 안된다.
“인젠 수밀을 요구하는 제약공장도 없습니다. 말하자면 가짜꿀에 밀렸지요.”
사천성이 고향인 곽씨가 입을 다셨다. 몇해간 받지 못한 돈이 30만원이나 된다고 했다. 립법기제의 허점을 파고들어 ‘먹어서 죽지 않는 꿀',‘먹어서 효능이 없는 꿀’이 상가에 버젓이 자리잡았고 그것은 성실한 양봉농들의 눈물로 돌아오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양봉제품은 로얄제리와 꿀이다. 로얄제리(蜂王浆)만 먹고 녀왕벌은 보통벌의 근 20배이상인 3~6년 산다. 벌농사 30여년 경력을 가진 리학의(호남성)의 말에 따르면 그들 손에서 수매해가는 로얄제리는 킬로그람당 가격이 180~240원이며 꿀은 수밀일지라도 최저로 10원좌우라고 했다.
“10원짜리가 100원이 되는지 1000원이 되는지 알 수 없는 현실입니다”
기자가 핸드폰으로 인터넷에서 팔리고 있는 로얄제리와 ‘천연꿀’가격을 보이자 리학의가 입을 다셨다.
“형세가 어떻게 변하든 저는 진품 꿀로 승부할 것입니다.”
가짜가 살판치기에 오히려 진품이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것이 허동춘씨의 지론이였다. 긍정적인 사유로 절망의 나락에서도 희망을 찾는 허동춘씨, 꽃을 따라 천리만리 움직이는 그의 걸음에 답이 있을 것 같았다.
운남성 추웅에서 사천성 자양까지 2000여리 되는 로정을 벌을 실은 차량과 함께 이동하기로 하였다.
정으로 통한 세상, 그는 혼자가 아니였다
2월 26일 오후, 오전까지 맑던 하늘이 불시로 흐려지더니만 보슬비가 간간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꿀을 뜨는 데는 맑은 날씨가 좋지만 벌을 이동시킬 때에는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이 가장 좋다. 왜냐하면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면 벌이 통에 들어갔다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류실이 적다.
“오늘은 먼저 300여통 벌을 싣고 사천성으로 움직입니다. 이제 1시 반 부터 싣게 됩니다.”
오토바이소리가 들리더니만 첫날 저녁에 보았던 동업자들이 몽땅 달려와 도와주었다.
오후 1시 반부터 시작된 일은 저녁 7시가 되여서야 다 끝났다. 짐을 싣는 데만 5시간 30분을 소요했다. 기차바곤을 떠올려볼 만큼 큰 대형 화물차 운전석에서 한쪽 다리를 굽히지 못하는 허동춘씨를 운전석 뒤에 있는 우층 침대에 올려보내고 발냄새가 난다면서 신을 벗길 거부한 곽씨를 조수석에 앉히고 나와 조수는 머리를 량켠에 보내고 뒤좌석에 웅크리고 누웠다.
“사실 저는 고속도로에서 제일 겁나는 것이 바로 화장실입니다.”
비속을 달려 사천성 경내 토산강(土山岗) 고속도로 휴게실 화장실에 들렸던 허동춘씨가 부랴부랴 되돌아 나오면서 말했다. 좌변기가 없었던 것이다. 한쪽 다리를 굽히지 못하는 상황에서 허동춘씨는 좌변기가 아니면 근본 ‘큰일’을 볼 수 없었다.
운남성 경내를 바야흐로 벗어날 무렵 운전기사의 전화가 울렸다.
앞의 고속도로 수금소에서 돈을 받는다는 것이였다. 운전기사는 급기야 바로 앞의 고속도로 출구에서 내렸다가 다시 올랐다.
운전기사가 출구에서 벗어났다가 다시 되돌아오른 덕분에 우리는 운남에서 사천까지 사이의 고속도로 통행비 1000여원을 절약할 수 있었다. 국가에서는 양봉차량에 한해 고속도로 통행료금을 면제한다고 문건까지 하달했건만 불과 100리도 안되는 거리에서 정책은 두가지로 실시되고 있었다.
2월 27일 오후 4시, 2000여리 길을 옹근 21시간 달려서야 우리는 마침내 목적지인 사천성 자양시 단산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보슬비가 잔잔히 내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적하작업을 기다리는 분들이 목적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벌가족’에서 련계해준 사람들이였다.
“진정을 갖고 만났습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인젠 가족으로 통합니다. 사천이나, 운남이나, 호북이나… 어데 가나 저는 무사통과입니다.”
사랑하는 안해와 아들외에는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는 남자 허동춘, 그에게는 단체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벌가족’이 따로 있었다...
벌이 먹고 난 나머지가 바로 ‘꿀’이다
마을을 형성하고 살아가는 한족들에 비해 소수민족들은 산촌의 기차역처럼 가담가담 떨어져 한적한 곳에 터를 잡고 있었고 집과 집 사이도 꼭 마치 마을과 마을처럼 떨어져있었다.
운남 추웅 이족자치구에서 허동춘의 스승인 류씨가 우리 일행은 물론 첫날에 동참했던 지인들을 자기 집에 초대하였다. 이족음식점이나 이족가정을 방문하고 싶다는 나의 요구에 자기 집에 초대하는 것으로 답한 것이였다. 자기 집에 초대하는 것은 최고의 대우임을 아는지라 소수민족을 만나고 싶다는 말은 더 이상 꺼내지 않기로 하였다.
나는 석청(돌에다 벌집을 짓고 생긴 꿀)이나 목청(나무에 벌집을 짓고 생긴 꿀)에 대해 물었다.
“벌이 만든 건 맞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벌이 먹고 토해낸 설탕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겁니다. 절대 대부분이 가짜이지요.”
첫날부터 말수가 적던 호남에서 온 장씨가 말했다. 그는 양봉기술을 배우며 직접 목격했다고 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석청이나 목청을 만들기 위해 바위나 나무에 벌을 분가시키며 혹간 자연산을 발견하게 되면 그 부분을 봉쇄한다. 그런 다음 설탕을 풀어놓은 커다란 대야를 벌집 밑에 놓아두는데 벌들은 먼길을 갈 필요 없이 설탕을 먹고 꿀을 만든다고 한다.
벌의 수량이 곧 꿀의 수량이다. 그러나 흔히 보는 석청이나 목청일 경우 벌집도 크지 않거니와 벌 수량도 많지 않기에 많은 꿀을 생산할 수 없으며 솔직히 벌 스스로도 ‘자급자족’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벌이 먹고 나머지가 바로 꿀입니다.”
벌이 먹고 남긴 것이 바로 꿀이라는 허동춘의 말이 가슴에 닿아왔다.
벌이 먹고 난 나머지를 뜨려고 이들은 일년 내내 만리장정을 하는 것이 아닌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였다.
인간의 요상한 심리가 꼬리치는 한 여기에 앉은 어느 누군가도 돈에 환장하면 꿀에 장난을 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피뜩 들었다.
꿀의 세계, 물은 깊었다
사천성 자양시 단산진 동쪽켠에 자리잡은 양봉장에서 지나가는 봉고차를 잡아타고 만찬에 참석하고 보니 우리까지 총 20여명이였다.
우리를 초대한 사람은 양봉농으로부터 꿀을 수매하여 되넘기는 거래자로 탈변한 내몽골에서 온 왕씨였다.
그는 얼마 전에 있은 일화를 터놓았다. 국내 모 유명 공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자기 회사의 꿀을 팔아 달라고 하더란다.
“자기들 제품은 마트에서 한근에 28원에 팔리는데 저한테 8원에 넘겨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싫다고 했더니만 5원에 넘겨 준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생각이 없다고 했더니만 가격을 더 낮출 수 있다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병 값만 해도 1~2원 가겠는데 5원에서도 깍아 준다고 했습니다…알고 보니 그들은 한병당 리윤을 50전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가짜를 생산해 막대한 리윤을 남길 것이라던 우리의 생각과는 천양지차였다.
“그러나 그들은 회사의 브랜드를 빌어 1억병을 단위로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왕씨의 말이 떨어지자 우리는 경악했다.
1억병! 1억병이면 병당 50전을 번다고 가정해도 5000만원이였다.
제약회사에 꿀을 납품하고 근 30여만원을 못 받았다던 곽씨가 취해 쓰러졌다. 진짜 꿀은 적치되고 가짜 꿀은 대량 판매되는 현실이 너무나도 억이 막혔기 때문이였다.
“숙성꿀의 봄이 올거니 곽형 걱정 마세요. 흔들리지 말고 견지해 나갑시다.”
허동춘씨의 말에 모두들 박수를 쳤다.
봄비가 잔잔히 내리는 날, 나와 왕경리를 제외한 벌농들은 몽땅 취했다.
봄바람, 희망으로 불기 시작했다
벌의 세계는 랭혹하고 분공이 명확하다.
일하기 싫어 빈둥거리는 벌이라든가, 벌집을 오염 시킬 수 있는 앓는 벌들은 반드시 축출된다.
로동벌은 벌집에 꿀이 많으면 힘들게 채밀을 나가지 않는다. 사명을 완수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벌집에 꿀이 비여있으면 로동벌은 아침부터 저녁 때까지 채밀에 쉴새 없다. 가다가 돌아오는 길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채밀에 나서야 하는 것이 벌의 속성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꿀을 가리켜 신들의 식량이라 했고 로마인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로 여겼으며 고대 이집트인들은 꿀에 악령을 쫓는 부적 같은 령험이 있다고 생각해서 미이라를 제작할 때 꿀을 사용했다.
1킬로그람의 꿀을 만들기 위해서는 꿀벌이 무려 560만여송이의 꽃을 찾아 다녀야 한다. 꽃이 사랑의 대가로 곤충에게 지불한 것이 바로 꿀이다.
벌이 아닌 사람이 만든 꿀이 진품으로 둔갑되는 도깨비 신화와 같은 현실, 그것을 마주한 국민은 구경 소비자일가? 아니면 피해자일가?
가짜 꿀을 만들고 돈묶음을 헤여보기에 여념없는 사람은 범죄자일가? 아니면 준범죄자일가?
한번 이동하는 데 드는 비용만 해도 최소 1만여원, 왕복통행이 힘 만큼 비좁은 S자형 도로를 멀미날 정도로 돌고 돌며 가야 하는 아찔함…그들의 매번 이동은 위험을 동반하고 있었다.
“화창한 날씨에 잘못 이동했다가는 정말 쫄딱 망합니다. 벌은 나가고 차량은 이동하고 자기 집을 찾지 못한 벌은 결국 죽고 말지요.”
3월 16일경에 허동춘씨는 산동성 청도로 앵두꽃 꿀을 뽑기 위해 이동하게 된다. 방대한 ‘벌 군단’을 이끌고 1년에 한두번도 아닌 10여차 이동하면서 ‘집시’로 살아가는 열혈 남자 허동춘과 그의 ‘벌가족들’!
“가짜를 생산할 거면, 이렇게 고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피타는 웨침과 같은 그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전에 쟁쟁하다.
글·사진 허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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