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12 08:46:48
우리가 흔히 즐겨쓰는 경전적인 성구나 속담들은 장기간의 생활실천중에서 선조들의 지혜를 집대성한 것으로 실로 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아울러 고도로 함축된 이런 경전명구들은 우리의 생활리듬을 정확히 재조명할 수 있는 지침이고 생활의 훌륭한 조력자이자 인생의 스승이 되는 것이다. 가끔씩 어떤 인간행위나 사건의 진행 과정을 한마디 또는 한줄의 성구로 쇠소리나게 결론지은 것을 볼 때면 선인들이 남겨놓은 천리의 오묘성과 귀중함을 절감하게 된다. 이를테면 지피지기하면 백전백승이요, 또는 덕은 쌓은 대로 가고 죄는 지은 대로 간다거나 비바람이 분 뒤에 무지개가 나온다 등등 많고도 많다.
하지만 이러한 경전적 성구나 속담의 뜻을 일변도로 리해하다 보면 어찌 못해 편견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은 모든 사물이 이분법으로 나뉜다는 또 다른 철리를 간과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면면이 살피지는 못해도 그냥 떠오르는 대로 누구나 공감이 가는 성구 몇개를 알아보기로 하자.
이를테면 ‘침묵은 금이고 달변은 돌이라’는 속담과 ‘말은 해야 맛이고 고기는 씹어야 맛이다’라는 속담은 말에 대해 서로 모순되는 뜻으로서 사람들에게 곤혹스러운 감을 준다. 모름지기 말이란 해야 하는 적중한 시간과 장소 배역에 따라서 충분한 리유와 사실을 바탕으로 똑똑히 의사표명을 해야할 뿐더러 급류가 여울을 지나듯 도도한 달변으로 가슴이 뻥 뚫리도록 명쾌할 때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복잡한 모순 속에 처했거나 실정에 대한 료해가 미비하거나 해석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쳤을 때에는 차라리 입을 철문처럼 굳게 닫아매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본인이나 타인에게 모두 좋은 것이다.
‘소귀에 해금 타기’라는 속담은 ‘소귀에 경 읽기’라는 속담과 뜻이 같다. 말하자면 무의미한 일에 쓸데없이 공들이기를 이르지만 어느 땐가 젖소농장에 가보니 소무리를 대상으로 경쾌한 음악을 지속적으로 틀어주고 있었다. 경상적으로 경쾌한 음악을 들려주면 젖소의 유즙이 썩 많이 분비된다니 상기의 속담이 조금은 무색해진다.
‘입은 비뚤어도 말은 바른대로 하라’는 속담이 있는데 과연 그러할지는 의문이다. 일전에 어느 친구가 면부신경마비증으로 입이 한쪽으로 비뚤어지니 어불성설이라 말이 어눌하게 나와서 달포나마 고생하고서야 회복되는 것을 보면서 느낀 것이 정말 입이 비뚤어지면 하려는 말이 바른대로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격언은 사람들에게 언제 어떠한 경우에서나 사실을 왜곡하지 말고 바른 입으로 비뚠 소리를 하지 말라는 뜻이지만 일부 사람들은 입이 비뚤지 않았어도 함부로 사실을 전도하거나 속에 없는 소리를 제멋대로 나불대기도 한다. 가끔은 오관이 멀쩡한 사람들도 경우시비없이 길거리의 시정배들처럼 아우성질이고 사사건건 무조건 싸잡아 폄하하는가 하면 또한 삼척동자도 믿지 못할 어처구니 없는 자기 주장도 꺼리낌없이 내세우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신용과 공평 도리를 운운할 수 없는 막말이 멀쩡한 사람들의 입에서 거침없이 쏟아져나오는 것을 볼 때면 저 입을 물리적으로 비뚤게 해놓으면 수학에서의 부수의 곱하기 원리처럼 오히려 바른 소리가 나오지 않으랴 싶기도 하다. 세치 혀가 사람을 잡는다고 기실 병으로 입이 비뚤어진 것보다 펀펀한 입에서 비뚤어진 소리가 나오는 것이 더 무서운 것이다.
호부무견자(虎父无犬子)라는 말이 있다. ‘싸리긁에서 싸리 난다’고도 표현하는데 애비가 범처럼 호기롭고 강하면 개같이 못난 자식은 없다는 말이다. ‘청출어람 승어람’이라고 부모보다도 훨씬 뛰여난 후대들을 많이 보고 있지만 가끔은 애비의 발뒤꿈치에도 못미치는 얼빤한 자식들도 보이고 있다. 신빙성 있는 력사인물을 꼽자면 당연히 삼국시기 촉나라를 창건한 류비의 실례를 들 수 있다. 류비는 일대의 영걸이지만 그 아들 류선은 얼떨떨하고 황음무도하여 제갈량 같은 능신이 보좌했어도 결국은 어리석게 애비가 남전북전하여 세운 촉나라를 망쳐먹고 말았다.
인간은 사회성 동물인 것 만큼 서로 어울려 살게 돼있고 그 살아가는 과정에 많게 적게 누구의 은혜를 입거나 또는 입히게 돼있다. 설중송탄이란 말처럼 눈보라 치는 추운 겨울날에 방안을 덥힐 숯을 보내준 것처럼 고마운 일은 없을 것이다. 하여 ‘한방울의 은혜를 옹근 샘물로 갚는다’거나 ‘베푼 은혜는 모래에 새겨도 받은 은혜는 돌에 새긴다’는 등등 은혜에 관한 속담들이 유난히 많지 않나 생각된다. 실생활중에서도 확실히 자기가 받은 은혜를 두고두고 몇갑절 갚아나가는 인정과 성심이 겸비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고 또 그러함으로 하여 인간사회를 훈훈하고 살맛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생긴 자그마한 이야기는 듣는 사람마다 불가사의라고 머리를 젓게 된다. 어느 현의 모 단위에서 체제개혁 일환으로 다른 단위와 합병하게 되였는데 마침 그 단위에서 여러해 총책임을 맡았던 A씨도 내부퇴직을 하게 되였다. 사업터가 바뀌는 것은 큰 일인지라 직원들의 정서는 뒤숭숭하게 되였고 책임심이 강했던 A씨는 이미 퇴직이 결정된 판에 나 몰라라 했으면 편했으련만 매일같이 상급부문으로 뛰여다니며 기본적으로 직원들이 적정한 일자리를 찾게 만들었다. 특히 오십이 다된 B과장을 상급 단위의 행정부문으로 전근시키느라고 체면을 무릎쓰고 천거하여 끝내 성사시켰었다. B과장은 워낙 별로 희망을 두지 않았던 전근문제를 A씨가 주선하기 시작할 때에는 당장 눈물을 쏟을 듯이 감지덕지한 표정으로 “정말 저의 재생부모와 같습니다.” 등등 입에 발린 소리를 깝싹깝싹 해대더니 정식 전근령이 내려오고 A씨가 퇴직하자 불시에 건망증에 걸린듯이 입을 싹 닦아버렸다. 가장 간단한 도리대로라도 다년간 책임을 맡았던 A씨를 모시고 끼니라도 나누면서 정중히 감사의 인사를 올리면 끝날 일이였지만 아닌 밤중에 사실떡 받은 듯 은혜를 입고도 한마디 문안조차 린색한 B과장의 몰렴치한 행태에 주위 사람들이 더욱 격분해하였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호랑이가 은혜를 갚은 이야기며 죽어서도 결초보은한 이야기 등등 구선설화들을 들으며 자랐고 설사 까마귀나 승냥이 같은 금수도 은혜를 갚는다는 소리는 알고 있다. 상기의 실례는 ‘한되의 은혜를 한말로 갚는다’거나 ‘배고플 때의 한알이 배부를 때의 한말보다 낫다’는 등 경전속담들을 무색하게 하는 특례라 할 수 있겠다.
그외에도 한가지 사물을 두고 상반되는 명구들도 많다. 이를테면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도 곱다고 하지만 언질이 생겼을 때 왕왕 곱게 나오면 만만히 보고 도적이 매를 드는 꼴불견도 많은 것이다. 그러니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이 거칠다’고도 하는바 대방이 선량한 말을 하고 선량한 사람일 때 말이 고와야지 무턱 양보만 해서는 소인배에게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오래가면 진심이 보인다(日久见人心)고 하는데 세월이 아무리 가도 진심을 알 수 없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즉 인심은 배가죽을 사이두고 있다(人心隔肚皮)는 소린데 진정성이 없이 매끄럽기만 하고 항상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경전적 어록의 뒤면에 어두운 그림자가 비꼈다고 하여 결코 경전 그 자체가 비하되는 것은 아니다. 한잎의 동전에도 앞뒤면이 다르듯이 복잡다단한 인생사인 만큼 절대적인 정면으로만 보고 생각하면 오도될 수도 있고 우연과 특례도 있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는 소리다. 물론 경전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숙달하게 사용할수록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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