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룡 기층 전력일군 강유봉
115명에게 43만여원 기부
9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강유봉(58세)은 결코 적은 기부금액이 아님에도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더 베풀지 못하고 잘해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말했다.
강유봉이 20년 동안 기부를 견지했다고 하면 ‘생활형편이 넉넉해서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그는 국가배전망 길림화룡시전력공급중심 설치회사 시공대 대장 직무를 맡고 있는 기층 전력 사업일군중 한명 일 뿐이다. 그의 두 아이, 안해, 년로한 어머니까지 모두 강유봉의 월급 하나만 바라보며 생활하고 있다.
“사랑의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도울 수 있습니다.”
빈곤가정 어린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강유봉. 강유봉의 선행은 2002년부터 시작되였다. 당시 화룡시 팔가자진전력공급소에 출근하던 강유봉은 팔가자진 부련회 책임자로부터 적지 않은 학생들이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학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딱한 사정을 접했다.
강유봉은 “아직도 소화(가명)네 집을 찾아간 첫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소화는 제가 도와준 첫 아이입니다.”고 입을 뗐다.
소화네 집을 처음 찾은 건 3월초, 쌀쌀한 날씨였지만 집은 난방이 되지 않아 아주 추웠다. 8살 꼬마 소화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숙련된 솜씨로 감자를 깎고 있었으며 거동이 불편한 소화 엄마가 방바닥에 누워있었다. 자기의 작은아들과 동갑인 소화를 보니 못내 안스러웠으며 꼭 이 작고 가여운 아이를 도와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단다.
강유봉은 들고 간 돈 1000원을 소화 손에 건네주면서 “아저씨가 앞으로도 계속 도와줄 것이다. 너는 걱정말고 학업에 열중해라. 절대 어려운 생활형편 때문에 학업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
그 후 강유봉은 매달 500원씩 6년 동안 소화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넸으며 소화의 생일 때나 6.1절이 다가오면 두 손 가득 선물을 사갖고 가 소화에게 건네주었다. 그렇게 소화는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견지했으며 이젠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했다.
“많은 아이를 도와줬는데 그중에 군이(가명)라는 아이가 유난히 저를 ‘아버지’처럼 따랐고 저 또한 군이를 아들처럼 많이 아끼고 도왔습니다.”
강유봉은 군이와 자신의 인연을 터놓았다. 군이의 부모는 차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년로한 조부모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년로한 조부모는 군이의 학업과 생활을 돌볼 상황이 안됐다. 군이의 딱한 사정을 접한 강유봉은 군이네 집을 찾아가 “이제부터 나를 ‘아버지’라 생각하고 도움이 필요할 땐 언제든지 나를 찾아달라.”고 군이를 다독여주었다.
강유봉은 매일 퇴근 후 군이네 집에 들러 군이의 숙제를 돌보고 친아버지마냥 하루 일과를 살뜰히 묻고 고민을 해결해주고 놀아주었다. 또 달마다 500원씩 조학금을 건네는가 하면 생일이면 아버지처럼 군이가 원하는 선물을 사다주었다.
군이는 이제 대학을 졸업했고 얼마 전 모 사업단위에 입사했다. 그 소식을 접한 날 강유봉은 정말 기뻤단다.
처음엔 한달에 500원부터 시작하여 현재는 한달에 3000원씩 기부하고 있는 강유봉의 생활형편도 넉넉한편은 아니다. 가족 모두가 강유봉만 바라보고 생활하고 있지만 강유봉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나누면 기쁨이 두배가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 가족이 밥을 굶지 않고 비와 바람을 막을 집이 있는데 뭐가 걱정입니까.”고 말하면서 앞으로도 자신이 도울 수 있는 만큼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강유봉의 동료들도 그를 따라배워 많지 않은 돈이지만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도움을 서슴지 않는 강유봉은 2018년 연변의 ‘내 고장 훌륭한 이’로 평의, 2019년과 2021년에는 길림성의 ‘내 고장 훌륭한 이’ 칭호를 받아안았다. 김란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