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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받은 제자가 불편했던 스승
 
발포인:김혜숙 발포시간:2018-11-21 클릭:

세상을 바꾼 인물

2018-11-21 08:40:22

1931년, 미국 뉴욕 콜롬비아대학의 화학과 해럴드 유리 교수는 점심식사를 하던중 놀라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밤낮으로 연구에 매달린 끝에 액체 수소를 증류한 시료로 분광학적 방법으로 수소 동위원소의 스펙트럼이 어떤 모양일지를 계산해 마침내 새로운 수소 동위원소, 즉 중수소의 존재를 립증했다.

수소의 동위원소중 99.98% 이상을 차지하는 경수소는 핵에 양성자 하나만을 가지며 중성자는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유리 교수가 새로 찾아낸 중수소는 한개의 양성자와 한개의 중성자를 가진다. 그는 자신이 새로 발견한 중수소에 듀테륨(deuterium) 그리고 일반 수소인 경수소에는 프로튬(protium)이라는 이름을 새로 붙였다.

일반적인 경수소에 비해 약 5000분의 1 비률로 존재하는 중수소는 방사성이 없으며 독성도 크지 않다. 따라서 중수소 및 중수소가 만드는 화합물은 화학실험에서 방사성을 띠지 않는 표지로 사용되거나 특정 분광법의 용매로 사용된다.

1934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해럴드 유리 박사의 연구 모습.

연구 결과가 발표된 지 2년 후인 1934년 유리 교수는 중수소를 발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유리 교수의 박사과정 지도교수로서 함께 중수소 특성 연구 및 분리실험을 하기도 했던 길버트 루이스 교수가 갑자기 아무런 설명도 없이 미국 국립과학학술원 회원직을 사임한 것이다.

1913년부터 국립과학학술원 회원으로 선정된 루이스 교수는 사실상 미국 현대화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대과학자였다. 화학도들이 필수적으로 배우는 화학결합의 기본적 리론인 공유결합을 비롯해 루이스 구조식, 루이스 산, 염기 등의 개념이 모두 그의 연구로 정립되였다.

또한 그는 1912년부터 1941년까지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의 화학학원의 원장으로 재직하며 그 곳을 세계 화학 연구의 중심지로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돌연 국립과학학술원 회원직을 사임한 게 화제가 되였던 리유는 제자인 유리 교수가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데 대한 상실감 때문이라는 소문 때문이였다.

루이스 교수는 1933년 중수소를 분리해 순수한 중수를 처음으로 얻었으며 중수소의 특성 연구 등의 업적을 쌓았으나 노벨상은 야속하게도 제자인 유리 교수에게만 수여됐다.

그런 소문이 퍼진 데는 또 다른 리유가 있었다. 루이스 교수는 평생 동안 30여차례에 걸쳐 노벨 화학상 후보로 지명되였으나 번번이 탈락했다. 특히 1932년의 노벨상 탈락은 그에게 매우 큰 상처를 남겼다. 당시 그는 라이벌 관계였던 어빙 랭뮤어와 함께 화학상 후보로 올랐지만 결국 랭뮤어가 노벨상을 차지했다.

굵직한 업적들을 남긴 루이스 교수가 이처럼 노벨상과 인연이 멀었던 것은 그의 성격 탓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에 있어서 완벽주의를 추구했던 그는 자신의 의견과 조금만 달라도 매우 공격적으로 대하군 했다.

심지어 독일 류학시절 자신의 연구지도교수였던 발터 네른스트까지 공개적으로 비판해 적대적인 관계가 되였다. 따라서 네른스트와 교류하던 저명 화학자들과도 사이가 좋지 못했다. 또한 노벨상위원회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던 스반테 아레니우스와도 사이가 좋지 않아 업적에 비해 학계에서의 그에 대한 평판은 나쁜 편이였다.

비운의 과학자로 불린 길버트 루이스는 결국 1946년 3월, 자신의 연구실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실험도중 시안화수소의 증기를 흡입해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이다. 하지만 실수로 인한 사고사인지 아니면 바로 그날 라이벌인 랭뮤어와 론쟁을 벌린 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인지는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길버트 루이스 교수.

반면 스승인 길버트 루이스에 비해 유리 교수는 배려심이 많았을 뿐더러 제자와의 관계도 매우 좋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제자와의 일화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생명의 기원을 밝힌 과학자로 주목을 끈 스탠리 밀러와의 연구다.

대학원에 입학해 유리 교수의 실험실에 들어간 밀러는 생명체를 이루는 분자에 대한 강의를 들은 후 유리 교수를 찾아가 자신이 직접 그 실험을 해보고 싶다고 제의했다. 이후 그들은 합의하에 원시 지구에서의 원시 생명체가 탄생하는 과정을 모방한 실험장치를 만들었다.

플라스크 안에 원시 대기의 주성분인 메탄, 암모니아, 수소 등을 넣고 바다를 재현하기 위해 아래쪽에는 물을 담았다. 이후 화학반응의 촉매 역할을 했을 화산폭발이나 번개를 인공적으로 모방한 전기방전을 일으켰다.

그러자 불과 일주일 만에 플라스크의 물 색갈이 짙고 탁한 붉은색으로 변했으며 분석한 결과 아미노산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유기물질, 즉 초기 생명체의 구성성분들이 발견됐다. 밀러는 유리 교수의 도움으로 이 연구 결과를 《사이언스》 지에 게재했고 많은 론난이 있었으나 그는 생명의 기원을 밝힌 과학자로 주목을 끌었다.

그런데 유리 교수는 보통 실험의 책임자로 론문에 올리는 교신저자 목록에도 자신의 이름을 올리지 않고 그 공로를 모두 밀러에게로 돌렸다.

길버트 루이스 교수가 제자의 이 같은 배려심을 지녔다면 아마 그는 불운의 과학자라는 타이틀을 달지 않아도 되였을지 모른다.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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