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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가루 주머니서 탈출 시도하는 청춘들
 
발포인:김혜숙 발포시간:2019-02-21 클릭:

2019-02-20 09:19:03

‘전 세계 3분의 1의 젊은이들이 캉가루족이다.’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이런 뉴스들은 ‘캉가루족’이 아직까지도 수많은 젊은이들의 삶의 선택임을 상기시킨다. 특히 대도시의 경우에는 날로 치솟는 주거비 부담과 생활물가의 전반적인 상승으로 인해 젊은 층 캉가루족의 비례가 3분의 1을 훨씬 웃돈다.

캉가루족에 관한 한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수치에 따르면 ‘캉가루족’의 비례가 가장 높은 년령대는 28세~38세 중청년층이다. 월 수입이 1만원을 넘는 응답자들 중에서 40%가 여전히 캉가루족이라고 답했다. 도시의 65%의 가정에 캉가루족이 존재한다는 통계수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삶의 중압감에 시달리면서도 스스로의 자립을 선택, 캉가루족이 되지 않으려 분투하고 있다.

이번 기 청춘리포트에서는 캉가루족이 되지 않으려는 청춘들을 찾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곽예영(가명, 녀, 28세, 한국 서울)


한국에서 석사학위를 딴 후 반년 동안 취업준비생으로 보내다가 이제 취업에 성공한 지 5개월 되는 신입사원이다. 학교 다닐 때부터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아두었던 4만여원(인민페)으로 월세집 보증금을 내면서부터 경제적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게 되였다.

우선 거주지 선정에서 회사와 지하철 7개 역 정도 떨어진 곳에 첫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월세가 조금 더 비싸더라도 이동거리가 가까운 곳을 선택한 리유는 아침잠이 소중했기 때문이다. 아침에 조금 더 잘 수 있다는 그 여유로움, 그 뿐만이 아니다. 퇴근 후에도 집이 가까우면 피곤한 하루가 조금 덜 힘든 느낌이다. 그 밖에 ‘교통비’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혼자 살면 아빠트 관리비용에 전기료금, 난방비용 등 생각보다 지출이 많다. 부모님과 함께 있을 때에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생활필수품도 다 돈을 내서 사야 한다. 화장지가 대표적인 례이다. 늘 집에 있던 그 두루마리 휴지가 글쎄 돈 내고 사려고 보니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다. 당연했던 것들이 새로이 보이는 순간이였다. 여태 살면서 단 한번도 내 돈으로 사보지 않았던 물품들이 필수품이 되여버리고 그렇게 자잘하게 쓰는 돈이 꽤나 많이 나갔다.

처음에는 혼자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설레임으로 가득했다. 어떻게 살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도 해보고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며 집에 늦게 귀가할 수 있다는 등 겉으로 보기에는 폼나는 싱글라이프지만 사실상 외로운 홀로서기이다. 혼자 먹는 밥이 맛이 없고 혼자가 싫은 외로운 날에는 가족들과 고향이 유난히 그리운 날들이 찾아온다. 다시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 또는 다른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 다시 학생이 되여 사회인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부모님의 보호 안에서도 ‘나’라는 개인이 존재한다. 힘이 들 때 가족, 친구들에게 의지할 수 있기에 우리는 힘을 얻고 다시 살아간다. ‘내 집 마련’은 아직 꿈에 불과하지만 혼자 자취하며 살아가는 지금의 시간이 앞으로의 홀로서기 련습, 앞으로를 살아갈 용기를 터득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김선화(가명, 녀, 26세, 연길)


대학을 졸업한 이후로 더는 부모님에게 손을 벌린 적이 없다. 아직 미혼이다 보니 부모님에게 얹혀살고 있지만 주거환경을 공유하는외 경제적인 독립은 한 지 오래되였다. 매달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꼬박꼬박 들여놓고 있다.

2년 가까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더 나은 비전을 위해 1년 전부터 연구생 공부를 시작했다. 따라서 경제원천도 끊겼다. 공부만 하기에는 친구들을 만날 때나 옷을 살 때나 부모님에게 손을 내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학원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해 몸이 덜 힘들며 시급을 높게 받는편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평소 학교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대학에서 배운 전공을 살려 학원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으며 주말에는 대학생 과외도 겸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가르쳐주면서 나 또한 실력이 탄탄해질 수 있는 기회라 이런 점이 좋았다.

처음에 시작할 때에는 걱정을 많이 했다. ‘내가 학생을 잘 가르칠 수 있을가? 아이들이 내 말을 믿고 잘 따라올가?’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지만 아이들을 어떻게 다루면 좋을지, 또 학년별로 어떤 조언을 해주면 좋을 지 고민을 하다 보니 지금은 처음보다는 능숙하게 일을 할 수 있다. 또 내가 직접 겪었던 학창시절을 떠올려보며 후회되였던 경험을 학생들에게 말해주면 자연스럽게 멘토 역할을 하게 되는 것 같다. 학생들의 성적이 오를 때 뿌듯하기도 하고 더 열심히 가르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요즘은 직접 나를 찾아주는 학생들이 생겼다. 그만큼 수입이 점차 많아졌다.

부모님이 돈을 대여주면 어디에 썼으며 어디에 쓸 것인지 일일이 설명을 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은 나로 하여금 자신의 생활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게 했다.

★최설봉(가명, 남, 33세, 산동 유방시)


대학에 입학하면서 나는 부모님에게 의지하지 않고 대학시절 생활비는 스스로 벌겠다고 결심했다. 이건 내가 자립의식이 강해서가 아니라 부득이하게 그렇게 된 것이다. 11살 차이가 나는 녀동생은 그때 당시 소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나는 조금이라도 부모님의 경제적인 부담을 줄여드리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스트립댄스에 흥취가 있었던 나는 대학 1학년, 학교 근처에서 30평방메터 되는 춤 련습실을 임대하여 흥과 끼가 넘치는 친구들과 수업이 없는 시간이거나 주말에 모여 저녁 늦게까지 춤 련습을 했다. 학교 및 사회의 각종 행사에 초청되여 공연을 하고 다른 도시 유명한 댄스팀들과 댄스배틀을 펼치면서 춤 실력과 안무 연출 실력을 쌓아갔다. 물론 내 손안의 돈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대학 3학년부터 댄스학원을 직접 운영하여 댄스 초보자들을 직접 가르치면서 춤에 대한 열정을 키워주고 누구나 ‘춤신 춤왕’이 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해주고 있다.

지난해에는 녀자친구와 결혼 등록을 하고 스스로 번 돈으로 아빠트와 자동차 계약금을 냈다. 달마다 대출금을 갚고 있지만 야무지게 삶을 살아내기 위한 조건은 부모님에게 기대지 않고 기본적인 의식주를 스스로 잘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가 생각한다. 번듯한 직장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꾸준히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즐겁게 삶을 즐기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혜미(가명, 녀, 29세, 북경)


‘스스로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평범하고 지루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혹시 돈 많은 남자 한명 골라잡는다면 모를가.’ 하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였다. 내가 어떤 삶을 살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오로지 내 몫이였다.

5년 전, 길림시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아는 언니의 소개로 대형 오디션 프로그램 통역을 하러 북경에 가게 되였다. 갓 졸업한 대학생에게 1만원이라는 많은 급여와 수도 북경이라는 기대에 한껏 부풀었다. 작은 도시에서 태여나 더 빛나고 큰 세상을 보고 싶었던 건 어렸을 때부터 선망해온 것이였다. 하지만 현실은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지속되는 밤샘작업에 하루종일 밥 한끼 먹지 못하고 늦은저녁 숙소에 돌아가지만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문서번역에 눈물 젖은 컵라면을 먹기도 했다.

부모님의 곁을 떠나 낯선 대도시에서 아는 얼굴 몇몇 없이 그 누구보다 열심히 뛰였다. 예능프로그램 통역일도 해보고 대형 외자기업 사장실 비서로도 일해봤으며 영화와 음악 제작사에서 전문적인 일을 배워보기도 했다.

북경에서 항상 제일 골머리를 앓는 건 뭐니뭐니 해도 집세문제이다. 5년째 한결같다. 전에 일했던 회사에서 한달에 받는 월급중에 거의 절반이 집세로 나갔다. 살고 있던 집에서 집주인이 갑자기 방을 빼라고 하여 한겨울에 급하게 세집을 찾은 적이 있다. 중개인에게 속히워 가짜 부동산 계약서를 작성했다가 결국 보증금을 겨우 돌려받긴 했지만 하마트면 추운 겨울에 돈도 없이 길바닥에 나앉을 번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부모님에게는 힘들거나 고생하는 것을 단 한번도 털어놓은 적이 없다. 생소한 대도시에서 집을 찾으러 다닐 때거나 이사할 때 너무 무섭고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난 이제야 정말 일이 잘 풀렸으니 걱정 말라고 얘기했다.

나를 포함한 주변 많은 친구들 그리고 지인들 고향을 떠나 학업 또는 취업으로 인해 혼자 독립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도 나처럼 홀로서기가 처음부터 쉬운 일은 아니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느 시기까지 자식은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그 시기를 지나면 독립하는 것이 백번 맞다. 경제적인 독립 없이 정신적 독립은 절대 없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의 돈으로 부모님의 집에서 나른한 꿈만 꾸는 것은 스스로의 능력과 용기를 묻어버릴 것이기에 아직은 도전하고 싶은 것이 많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미래에 대한 답을 성급하게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열심히 노력하고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미래의 방향이 점점 더 뚜렷해질 수 있지 않을가 기대를 해본다.

김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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