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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고 아픔이였던 곳…훈춘 항일력사를 만나다
 
발포인:김혜숙 발포시간:2019-06-27 클릭:

2019-06-27 08:36:10

13렬사기념비.


훈춘 대황구항일근거지는 동만지역 여러 근거지중 가장 먼저 구축된 근거지중 하나이다. 내지 항일근거지와 구쏘련, 조선을 이어주는 교통요지였고 왕청, 훈춘 두 현 근거지의 련결지점이기도 했던 이곳에 유적지를 조성하고 훈춘의 항일력사를 되돌아보는 건 어찌 보면 당연지사이다.

지난 21일에 찾은 훈춘 대황구항일근거지 유적지(아래 유적지)는 7월 1일 당창건일을 맞아서인지 단체참관객들로 무척이나 북적거렸다.

훈춘당사전람관 1층 홀에는 입당선서문이 새겨져있다.


우리 성 유일 현급 시에 건설된 성급 당사전람관


현재 유적지에 건설된 훈춘당사전람관은 2015년 그때 당시 이미 11년간 운영돼온 훈춘당사전람관 옛관 맞은편에 건설된 신관이다. 총면적이 3800평방메터, 전시구역 면적이 2400평방메터에 달하는 이곳 3층짜리 신관은 우리 성에서 유일하게 현급 시에 건설된 성급 표준의 당사전람관이다.

그중 1층, 2층은 전시관, 3층은 교육훈련중심으로 사용되고 있다. 참관객들에게 공개된 전람관은 당사와 렴정 두 부분 내용으로 나눠 훈춘 당조직의 탄생, 발전, 장대, 그리고 대중들을 이끌고 전쟁, 혁명, 건설, 개혁한 빛나는 려정을 전시했다.

특히 당사전람관에서는 당창건 초기, 항일전쟁 시기, 해방전쟁 시기, 훈춘 전면건설 시기, 사회주의 시기, 개발개방 시기 6개 부분으로 조각, 밀랍 인형 및 장면 재구성, 멀티미디어와 문물 전시로 훈춘 당조직의 부동한 시기의 전투력사를 보여줬다. 전람관에는 전쟁물품, 기념휘장 등 100여건에 달하는 혁명문물, 1000장에 가까운 사진이 전시됐고 13렬사, 일본제국주의의 침략, 류정평 참사 등 10개 장면을 재현해 참관객들을 그때 그 시절로 안내했다.


죽으면서도 총기는 지키고 싶었던 소대장 오빈


오빈은 유적지에 조성된 대황구 13렬사릉원에 매장된 13명 렬사중 한명이다. 굳이 그의 이름을 거론하는 건 안내자들로부터 전해들은 그의 죽음이 가장 참담해서이다.

1933년 8월 18일, 훈춘현유격대 19명 대원이 대황구를 찾아 지주집 빈방에 잠간 머물렀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 반역자 배원일이 일본수비대와 밀강 괴뢰무장자위단으로 구성된 토벌대 60여명을 청수동으로 안내했다. 보초병 김재근이 토벌대를 발견할 당시에는 이미 늦었고 유격대 대원들에게 이 사실을 급히 알렸지만 적들이 포위사격을 시작한 뒤였다. 소대장 오빈은 전우들이 포위망을 뚫고 나갈 수 있게 엄호하다 중상을 입었지만 흘러나오는 창자를 끌어안고 전투를 견지했고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적들 손에 무기를 빼앗기지 않으려 노리쇠는 빼서 멀리 던져버리고 총은 가슴 아래 단단히 깔고 전사했다.

그렇게 몇시간의 전투를 거쳐 포위망을 빠져나간 대원들이 돌아왔을 때 오빈, 박진흥 등 13명은 장렬히 희생됐고 살아남은 대원들은 이들을 희생된 곳에서 서쪽으로 30메터 좌우 떨어진 산기슭에 묻었다. 1960년 훈춘현인민정부에서 이곳 묘지에 13렬사를 기리기 위한 기념비를 세우면서 13렬사릉원이 조성됐다.

13렬사릉원은 훈춘당사관 뒤편으로 에돌아 내물 우에 놓인 흔들다리를 건너 정갈하고 조용한 숲길을 따라 십여분 정도 걸으면 만날 수 있다.

괴뢰군봉기 유적지.


편지 한통으로 시작된 괴뢰군봉기


13렬사릉원에서 반대방향으로 500메터 지점에 위치한 괴뢰군봉기 유적지는 현재 간단한 소개글을 새겨넣은 돌비석 하나만 세워져있지만 이곳 역시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1934년 여름, 대황구항일유격근거지 군민들이 왕청현으로 철수한 뒤 일본침략군은 전투력이 비교적 강한 괴뢰경비려 제35퇀 제1영 제1련을 대황구에 주둔시켰다. 그렇게 1년 남짓 지난 1935년 3월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독립사단 부단장 후국충이 이 주둔군 련장 조옥새의 편지를 받았고 편지를 통해 원 동북군 군관이였던 이 련장이 항일무장을 토벌하는 것을 원치 않고 있음을 알게 됐다.

답신에서 후국충은 조옥새에게 봉기를 일으켜 함께 항일할 것을 요청했고 대황구 괴뢰군주둔지를 포위한 항일련군의 압박 속에 부대를 거느리고 항일대오에 합류했다. 이 련은 동녕현 로흑산, 왕청현 라자구, 태평구 등 전투에서 수차례 전공을 세웠다.

이 봉기대오의 병사였던 장택민은 후날 모택동의 보위참모, 주은래의 수행 부관을 지냈고 퇴직 전에는 중국인민해방군 총후근부 차량선박부 부부장을 지냈다.


글·사진 박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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