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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사가 숨쉬는 장인촌 ‘돌담’
 
발포인:김혜숙 발포시간:2021-06-18 클릭:

 

2021-06-18 08:4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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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인강 집단부락 유적으로 남은 돌담.


‘장인강 집단부락’, 길이와 너비가 각각 100메터로 1만평방메터의 면적을 차지하는 울안에서 100가구에 528명이 목숨을 이어갔다고 한다.

지난 세기 30년대 일제는 항일련군과의 련계를 단절하려는 목적에서 연변지역의 인민군중들을 강압적으로 이 같은 ‘집단부락’에서 살게 하였다.

화룡시에서 근년에 집단부락 유적을 새로 발견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16일 화룡시로혁명근거지건설촉진회 양성지(63세) 부회장과 함께 투도진 장인촌으로 향하였다.


◆우연한 발견

우연함과 세심함, 장인강 집단부락유적의 발견 비화는 이렇게 개괄할 수 있다.

때는 2019년 5월 1일이였다. 화룡시로혁명근거지건설촉진회 사업일군들은 문두찬 렬사의 유가족과 함께 문두찬 렬사의 묘지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중 수풀 속에서 구간구간 모습을 드러낸 이 돌담에 신경이 쓰였죠.” 지난해에 부설된 빨간색의 보도블록 우를 걸으면서 양성지씨는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하였다.

동행하였던 문두찬 렬사의 사촌녀동생인 문복순(2019년 당시 84세) 로인이 사업일군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던 것이였다. 장인강 집단부락에서 태여났다는 문복순 로인의 증언을 실마리로 더한층의 고증을 거친 결과 바로 이곳이 일제가 동북지역을 통치하던 초기에 연변지역에 시험적으로 설립한 8개 집단부락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을 확정 짓게 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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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강 집단부락 포대 흔적.


◆장인강 집단부락

원명이 ‘봉의동’인 장인강 집단부락은 1933년 4월에 착공하여 그해에 사용에 투입되였다.

현장 측정에 따르면 장인강 집단부락 유적은 변의 길이가 약 100메터인 정방형 모양의 한뙈기 땅으로 네 각에는 포대가 설치되였으며 담벽의 기초지반 너비는 약 1.5메터, 상부 너비는 약 0.5메터에 달한다.

소위 간도성공서에서 편성한 ‘간도성 집단부락 건설 일람표’에 의하면 장인강 집단부락은 100가구 500명을 수용할 예정이였으며 실제로 100가구 528명을 수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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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신, 문두찬, 리언삼 렬사 묘비.


◆담벽내의 생존정황

“자유란 집단부락에 존재하지 않았죠.” 양성지씨의 해설이다.

물을 긷고 땔감을 하는 것조차 일일이 청시하여야 하며 3명 이상이 같이 걸어다니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금지되였다. 밤에는 문을 잠그거나 말을 하여서도 안되며 등잔을 켜서도 안되였다. 일거수일투족이 엄밀한 감시를 받는 가운데 수시로 몸을 수색하거나 구타를 가하기도 하였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인구밀도에 렬악한 생존환경과 거주조건으로 말미암아 집단부락에는 이따금 전염병이 돌기도 하였다. 또한 20세 내지 50세 사이의 남성들은 강제로역으로 해마다 두번씩 광산이나 림산작업소로 보내졌으며 영영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토지세, 가축세, 가구세, 도덕회비 등 10여가지에 달하는 온갖 명목의 가렴잡세를 징수하기도 하여 담벽내 촌민들의 처지는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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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렬사 묘비.


◆3년 사이 1만 3451곳으로 늘어

“장인강 집단부락은 수많은 집단부락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였습니다.” 비교적 선명한 한 단락의 돌담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춘 양성지씨는 집단부락에 대한 소개를 이어갔다.

집단부락 관련 구상은 1931년 11월에 처음으로 제기되였으며 연길, 화룡, 훈춘 등 3개 현에 우선적으로 시험 설립하기로 하였다고 《만주국경찰사》는 적고 있다.

그리고 1933년 4월에 장인강, 청산리, 토산자, 태양촌, 춘흥촌, 세린하, 북하마탕, 락타하자 등 첫패 집단부락들이 건설되였다. 1934년 봄에는 36개의 집단부락이 한꺼번에 설립되였으며 이듬해인 1935년에 이르러서는 연변지역의 집단부락 총수가 123곳에 달하였다. 그중 연길현에 40개, 화룡현에 20개, 왕청현에 27개, 훈춘현에 21개, 안도현에 15개가 건설되였다.

1935년부터 1938년까지는 집단부락을 대량적으로 짓던 시기였다. 3년 사이 동북지역에는 1만 3451곳에 달하는 집단부락이 세워졌다고 한다.

“솔직히 유적을 발굴한다는 것은 무미건조한 일입니다. 그러나 발굴하고 나면 가슴 한켠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죠.”

최근 몇년간 화룡시로혁명근거지건설촉진회에서 새로 발굴한 홍색유적이 10곳에 달한다는 양성지씨는 장인촌을 둘러보면서 이같이 피력하였다.

우거진 수풀, 둘러보기 편하게끔 부설된 보도블록, 잔존 돌담과 포대의 흔적, 해란강으로 쉬임없이 휘달리는 장인강 그리고 이 땅에 묻힌 숱한 이야기와 더불어 처연하게 울부짖는 까마귀 두어마리… 목가적이라고만 하기에는 아쉬운, 긴 생각의 여운을 남겨주는 이곳의 풍경이였다.


글·사진 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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