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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대유적 품은 포대촌, 관광명소 조성에 알심
 
발포인:김혜숙 발포시간:2021-08-11 클릭:

 

2021-08-06 08:19:15

훈춘시 도심에서 남쪽으로 약 5분가량 운전하다 보면 길 왼켠에 아늑하게 들어앉은 마을이 시야에 들어온다.

3일, 미리 약속을 잡고 훈춘시 마천자향 포대촌에 다달으니 마을어구에서 박호산 촌당지부 서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은 곧장 청나라시기 유적으로 알려진 동포대유적지로 향하였다.


■동포대유적

마을 이름의 유래로 볼 수 있는 동포대는 지금으로부터 140년 전인 청나라시기 광서 7년(1881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광서 16년(1890년)에 준공되였다.

훈춘시가 훤히 보이는 동포대는 타원형 모양으로 조성됐으며 동서길이 100메터, 남북너비 70메터로 동쪽, 남쪽, 서쪽에 각각 독일제 크루프 대포 한대가 설치되여있었다. 참고로 대포 한대의 무게는 약 36톤, 사격거리는 45킬로메터에 달하였다고 한다.

포대를 둘러싼 성벽의 높이는 6메터 좌우였으며 지금이야 물의 량과 너비가 많이 줄어들어 작은 내가로 보이지만 당시 그 외곽으로는 너비가 9메터에 달하는 해자가 건설되였다.

동포대의 설립은 훈춘지역의 대표적 인물인 오대징과 련관이 있었다. 광서 6년인 1880년, 독판변무대신이였던 오대징은 짜리로씨야의 길림동부변경에 대한 침략과 잠식을 막기 위하여 원유의 8기병제를 개혁하고 정변군(靖边军)을 신설할 데 관한 의견을 제기하였다.

그리하여 훈춘에 각각 두개의 보병영과 기병영으로 구성된 위자군(卫字军)을 배치하게 되였다. 보병영마다 500명, 기병영마다 250명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후 3개영을 추가하여 인수가 도합 3000여명에 달하였다. 아울러 동, 서 두 포대도 설치하게 되였다.

지금의 포대촌에 세워졌던 동포대는 짜리로씨야침략군이 암저하로부터 훈춘으로, 훈춘시 근해가두 춘경촌에 세워졌던 서포대는 적군이 흑정자산으로부터 훈춘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였다.

1900년 7월 30일, 짜리로씨야침략군은 장령자를 넘어 훈춘으로 침입, 동, 서 두 포대를 향하여 진공하였다. 결과적으로 짜리로씨야군이 훈춘성을 점령하였지만 이 전투에서 청군은 200여명의 적군을 사살하였다.

1907년, 짜리로씨야군이 훈춘에서 철수하면서 서포대의 대포 3문을 략탈, 동포대의 대포 3문은 위만주국시기까지 보존되다가 일본군에 략탈당하였다.

짜리로씨야침략자들을 방어하는 중요한 조치 가운데 하나였던 동포대는 1981년 7월 28일, 길림성인민정부로부터 성급 문물보호단위로 선정되고 2018년 6월 12일에 훈춘시인민정부에서 이곳에 비석과 전반 동포대유적을 에워싼 8개의 경계 말뚝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


■안순화 렬사와 항일우물

포대촌은 항일유적도 품고 있다. 항일련군 제1로군 2사 4퇀의 재봉대 대장으로 지냈던 안순화(1909년—1937년) 렬사와 남편 리봉수 (포대촌 제1임 당지부 서기)의 발자취를 엿볼있다.

동포대유적의 남쪽으로 그들 부부가 직접 파고 기밀문건을 숨겨두었던 항일우물이 여직 보존되고 있다. 부대를 따라 포대촌에서부터 류정평, 남구, 남별리, 관도구 등 여러 곳에서 항일투쟁에 몸을 바쳐온 안순화 렬사는 1937년, 동경성 근처의 사도령자에서 있었던 전투중 적들에게 체포되였다. 손가락과 발가락을 자르고 가슴과 복부에 나무쐐기를 박는 등 적들은 그녀를 극악무도하게 살해하였다. 현재 포대촌에는 안순화 렬사를 비롯하여 총 25명 렬사를 기리기 위한 혁명렬사기념비가 세워져있다.


■대지주 한희삼과 작두

안순화 렬사 부부가 팠던 항일우물 근처에는 전반 연변지역에서도 대지주로 꼽히는 한희삼 및 일본군이 항일렬사들과 그 가족들을 잔인하게 살해하였던 곳이 있다.

백양나무가 우거진 이곳에는 보도블록이 곧게 부설되여있다. 길 량켠으로는 일상생활에서 멀어진 항아리와 매돌이, 끝에는 모방품으로 만든 피 묻은 작두가 놓여있다. 당시 실지로 사용하였던 작두는 현재 길림성혁명박물관에 소장되여있다고 한다. 한걸음한걸음 앞으로 다가감에 따라 죽음으로 가는 길이였을 공포감이 불시에 밀려와 전률을 금치 못하였다.


■‘민속골동품·홍색문물 수집부’

2016년부터 촌에서는 민속골동품과 홍색문물을 수집하는 데 알심을 들여오고 있는데 지금까지 수집한 것만 천여점에 달한다고 한다.

그 사이 촌에서는 문물수집 관련 회의를 3차례 소집하고 ‘민속골동품·홍색문물 수집부’를 따로 설립하기도 하였다. 수집부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저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동포대유적지에서 발견된 크루프 대포의 부속품과 탄알, 안순화 렬사가 사용하였던 마선부터 청나라시기 그림, 위만주국시기 화페까지 마치 박물관에 들어선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박호산 촌당지부 서기의 소개에 따르면 지금까지 촌에서 수집한 짜리 로씨야의 침략에 맞서 싸웠던 시기 문물이 492점, 항일시기 71점, 해방전쟁시기의 문물이 484점, 민속류 골동품이 235점이며 그 가운데 9점은 상부에 바쳤다고 한다.

향후 포대촌에서는 면적이 500평방메터의 촌급 홍색박물관과 안순화 렬사를 비롯한 혁명영렬 조각광장을 건설하고 동포대유적, 항일우물, 한희삼 죄증유적 등을 계속하여 보완할 계획이란다.

  글·사진 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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