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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만필] 소금꽃을 보았는가!
 
발포인:김혜숙 발포시간:2018-10-31 클릭:

편집/기자: [ 최화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8-10-30 10:31:02 ] 클릭: [ ]

─ 강경애의 <소금>을 읽다

김혁

조선족의 력사와  애환을 견증하는 명물 ‘일송정’이 솟아있는 룡정의 비암산이 세간의 주목 속에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산자락에 코스모스, 백일홍 등 화사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여 그야말로 ‘꽃바다’가 절경을 이루고 있다. 산곡을 가로지르는 유리잔도도 부설되여 관광객들이 다리 우에서 환락의 ‘비명’을 지른다. 집계에 의하면 명절 때면 일평균 8만명에 달하는 유람객들이 이 조촐한 산을 찾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유흥에 희희락락하고 있는 사람들은 비암산으로 오르는 산기슭 솔숲 속에 외홀로 서있는 한 녀인의 석비는 무심코 지나치고 있다. 그가 누군지 모르며 알려고도 않는다. 그가 바로 녀성 작가 강경애의 문학비이다.

강경애하면 선참 떠오르는 작품이 바로 그의 대표작의 한부인 <소금>이다.

일제강점기의 간도(연변의 옛 명칭)지역, 봉염 어머니의 큰 아들 봉식은 장거리에서 일제에 항거하는 내용의 삐라를 뿌리다가 일본령사관에 잡힌다. 겨우 풀려나지만 봉식은 또 한번 가출을 한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찾기 위해 막내딸 봉염이와 함께 여러 곳을 전전한다. 그 와중에 청국인 지주의 집에 식모로 들어갔다가 지주에게 겁탈을 당하게 된다. 어머니가 겁탈을 당하는 것을 목격한 봉염이가 저지하려다가 실수로 지주를 죽이게 되고 그로 인해 모녀는 감옥에 갇힌다. 불운하게도 겁탈을 당한 어머니는 지주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고 결국은 만삭이 되여 석방이 된다. 오직 아들 봉식을 만날 꿈으로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어머니 앞에 계속 시련이 닥친다. 봉염이와 갓난아이마저 전염병으로 죽게 된 것이다.

가난과 질병, 지주의 착취에 부대끼던 어머니가 생존을 위해서 선택한 최후의 길은 다름 아닌 소금밀수이다. 남자들도 감당키 어려운 려정으로 어머니는 고통을 참아가며 오른다. 소금밀매를 하던 중도에 밀수군들은 일본군의 추적을 받게 되는데 이 때 항일유격대가 나타나 어머니 일행을 구해준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들에게서 아들이 유격대원으로 싸우다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 사건들을 통해서 어머니는 그 때서야 비로소 과거를 벗고 진정한 소금 맛을 하는 삶을 각오한다. 어머니는 밀수군들의 뒤를 따르지 않고 항일무장대를 향해 결연히 일어선다.

강경애의 <소금>은 당시 경성에서 발간하는 《신가정》1934년 10월호에 련재되였다.

“<소금>은 불행한 주인공의 행적을 통해 당시 간도 조선족이주민의 실체를 생생히 문제 삼고 있다. 한 이주농민가정의 몰락과정을 다룬 이 작품에서 작가는 봉염어머니를 통해 간도 류민의 삼중적 고통─ 원주민, 일제, 마적 등으로부터 피해를 받고 극도의 생활고에 시달리는 현실을 드러내려 했다. 그리고 한 녀자의 삶의 양태를 통하여 이주민들의 현실극복의식을 형상화하려 했다.” (오양호《일제강점기만주조선인문학연구》)

황해도 장연에서 태여난 강경애는 31년도 남편과 함께 룡정으로 이주하여 작가 생애의 대부분을 간도에서 보냈다.

1931년부터 1939년까지 강경애가 남긴 소설 작품 가운데 가장 먼저 씌여진 〈파금>이라는 소설을 제외하고는 모든 작품이 간도 룡정에서 씌여졌다.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어머니와 딸>, 간도를 잠시 떠나며 쓴〈간도를 등지면서>,〈간도여 잘 있거라>,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다룬 〈인간문제>, 하층계급의 궁핍한 참상을 그려낸〈지하촌>에서 <소금>에 이르기까지 모두 간도로 시작해서 간도로 끝을 맺고 있다.

우리가 익숙한 최서해 그리고 안수길도 간도의 체험을 문학적 기반으로 삼았지만, 리얼하고 치렬하게 다룬 녀성작가로는 강경애가 유일하다.

당시 간도의 체류체험을 그대로 담아낸 그의 작품은 시대적 상황을 민감하게 반영해 가난과 궁핍 속에 살아가는 민중을 그려내고 있으며 인간의 고통을 극도에까지 몰고 간 현실에 대한 아픔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그의 특수한 체험과 창작활동을 기리여 1999년 8월 8일, 룡정의 비암산 중턱에 ‘녀성작가 강경애 문학비’가 세워졌다. 당시《연변일보》문화부 기자로 뛰던 필자는 문학비의 건립에 대해 선참 보도한바 있다.

비석의 뒤면에는 작가의 략력과 더불어 “강경애는 다년간 룡정에서 살면서 최하층 인민들의 생활을 동정하고 올곧은 문학정신으로 간악한 일제와 그 치하의 비정과 비리에 저항하면서 녀성 특유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언어로 아름다운 문학 형상들을 창조한 우리 현대문학의 대표적인 녀성 작가이다.”라는 비문이 새겨졌다.

소설에서 나오다 싶이 당시 간도땅에는 소금이 귀했다. 소금은 장작림 군벌의 전매상품으로 거기서 얻어지는 조세 수입이 대단하였고 가격 또한 비싸게 공급하였다. 당시의 이주민들은 소금 값이 너무 비싸서 쌀보다 소금을 더 절약하였다고 한다.

소금밀수를 통제하기 위해 두만강지역에 ‘사염집사대(私盐辑士队)’라는 것까지 나왔다. 검은 정장을 하고 붉은 세모방망이를 휘두르며 집사대는 여간만 감때사납게 굴지 않았다. 발각되면 소금을 몰수당하고 벌금 수십원을 해야 했다. 엄중한 자는 영창에 집어넣고 지어 사형에 처하기까지 했다.

민족의 이주사를 굵직한 장편으로 펴내고 있는 최국철 소설가에 의하면 훈춘지역에서 생활했던 그의 할머니도 사염집사대의 행포를 자주 목격했다고 한다. 당시 집사대는 룡정 지신에 본부를 두었다고 한다.

허나 생활고를 못이겨 소금처럼 짠 눈물을 흘리며 소금밀수군으로 전락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집사대의 눈을 피해 어깨를 짓누르는 묵직한 소금마대를 지고 산발을 타고 강을 건넜다. 그런 그들의 휘여진 등허리는 철철 흘린 비지땀으로 절어 허연 소금꽃으로 얼룩이 졌다. 이렇듯 소금 한톨에도 우리의 한많은 애환이 깃들어있다.

소설 <소금>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는 소금을 매개로 어느 녀인의 기구한 삶을 통해 일제 강점기 이주민들의 궁핍한 삶과 현실을 자각해가는 과정을 소금밀수라는 비화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고있다.

강경애의 소설은 오늘에도 작가, 평론가, 문학도들에게 그나마 잘 읽혀진다. 강경애가 소설을 통해 주로 이야기한 녀성의 인권문제, 로동문제, 사회약자나 소외계층에게 산재한 문제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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